2018년 7월 8일 backup






2018년 7월 8일 새벽,

나는 그날이
2018년 7월 8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영화를 보았다.

낡은 술집에는 어디에나
포스터가 붙어 있는 영화라
제목을 말하면, 혹은 포스터를 설명만 해준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영화였다.


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았으나
보려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되었고
2부의 초반정도 부터 보기 시작했다.


조금 보다가 잘 생각이었다.

오늘은 피곤했고,
또 잠을 도와주는 약을 막 먹은 참이었다.

어쩐지 오늘은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오늘이 7월 8일 새벽이었다는 걸 알았다면
훨씬 더 빨리 약을 먹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로
잠이 들었을 테지만,

몸이 먼저 알고 있었던 것인지
내 몸은 잠을 거부했고,
머릿속 어딘가는 오늘이 7월 8일이라는 것을
세고 있었던 것인지

석 달간 먹지 않았던 약을
아무런 고민 없이 집어먹었다.


내가 보기 시작한 장면이
다른 장면이었다면
약 기운에 잠들었겠지만,

남녀 주인공이
두 대의 피아노를 마주 놓고
연주하는 그 장면과 곡이
가슴 어딘가를 간지럽히는 기분이 들어

꽤 오랫동안 영화를 보았다.


영화는 지루했고
쓸데없이 선정적이었다.
- 물론 감독이 의도한 바가 있었겠지만 -


앞부분을 보지 못한 탓인지
주인공들의 행동은 이해가 가지 않았고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도
짐작할 수 없어
잠깐잠깐 졸기도 했지만,


화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가 보기 시작했던 장면에서 나왔던
피아노곡이 흐를 때면

누군가 간지럼을 피는 것 같아
잠이 깨곤 했다.


한 시간 반을 넘게 볼 때 까지
영화에 대한 감상은
노래가 좋다는 것뿐이었다.


열정적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이가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어릴 때에 봤다고 해도
그때의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라
그들을 동경하게 되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영화의 3부가 끝났을 때,
끝까지 보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나는 오늘이 7월 8일인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로
4부의 어딘가에서 잠들었고



다시 일어난 것은
2018년 7월 8일 늦은 아침이었다.


그 아침에도 나는
오늘이 7월 8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오늘을 단지
예정이 있는 일요일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다.


일요일에 예정은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의 일이 요일을 따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측하기 어렵고
많은 곳이 문을 닫는 휴일엔
굳이 예정을 잡지 않는다.


오늘의 예정은 오래 전에 잡힌 것이었지만,
전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약기운이 가시지 않아

예정을 잡은 사람을 만나서는
조금 짜증을 냈다.


나는 그에게 왜 하필 오늘 같은 날에
예정을 잡은 것이냐고 불평했는데,

나의 불평은 일요일에 대한 것이었다.

만일 내가 오늘이 7월 8일인 것을 알고 있었다면
아마도 오늘이 7월 8일인 것에 대해 불평했을 것이다.
- 그리고 나는 거기에 대해 불평을 했어야 옳다. -


예정했던 일들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됐다.

다만 적당한 곳을 찾는데 시간을 보냈고,
또 다른 상대를 기다리는데 시간을 보내
평소보다 두 배 넘는 시간이 걸렸을 뿐

어려운 일은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결국 일은 끝내지 못했는데
휴일 저녁에 팩스를 보낼만한
적당한 곳을 찾지 못했고

-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팩스보다 선명하고 깔끔한 사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

예정을 잡은 그는
팩스는 내일 보낼 수밖에 없겠다며
일정을 종료했다.

나는 그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럴 거면 결국 모든 일을
월요일에 처리 하는 편이 나았다.

지금 몇 시간이나 걸린 일을
월요일에 시작했었다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끝냈을 것이다.

- 월요일엔 어디든 문을 열고,
누구든 정해진 자리에 있다. -


오늘이 7월 8일인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쓸데없이 시간을 보낸 것에 대해
무척 화를 냈겠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오늘을 그저
예정이 있는 흔치 않은 일요일로만 알고 있었으므로

피곤함에 별 말없이
그와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일을 정리하고

메모 앱을 열어
일기를 쓰려고 날짜를 확인한 순간,


그제서야 나는 오늘이
2018년 7월 8일인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하루동안 일을 하면서
입으로는 칠월 팔일을 말했으면서도
7과 8이라는 숫자의 이미지를 보고나서야

알아챈 것이다.



알람 맞추는 걸 잊어버린
아침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


분명 7월의 시작에서도
곧 8일이 될 거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쩐지 억울한 마음에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방안 어디에도
오늘을 7월 8일이라고
기억하게 해줄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그 뒤로 많은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잊었다고 해도
의미가 없다고 해도
괜찮을 시간이었지만,

이미 혼자서 많은 시간을 지내버렸지만,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제 예전 일들을
하나하나 붙잡아 기억하고 추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의 나는
나의 시간들을
과거의 추억으로 분류하여
색인을 붙여 두고서
찾아보는 사람이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맞춰
시간을 배열하고

그것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오늘을 기념하고 싶었지만,
냉장고엔 일주일치 식료품만 가득했을 뿐

맥주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나가서 간단한 무언가라도 사올까 했지만,

이렇게 어중간한 마음으로
오늘을 기념하는 건
과거의 나도, 이 날에 속한 누군가도

그다지 좋아할 것 같지 않아 그만두었다.


나는 이제 오늘이 7월 8일인 것을 알았지만

일요일 이 시간에 정해진 대로
방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과일과 야채를 손질해 담아두고

평일보다 긴 샤워를 하고

예년의 7월 8일과 같은 시간이 아니라
평소의 일요일과 같은 시간에
잠을 청했다.



오늘이
2018년 7월 8일이라는 것을 알고서

오늘이 지나가기 전에
잠이 들었다.



평소의 일요일과는 다르게
예년의 7월 8일처럼
잠을 도와주는 약을

두 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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