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이 아니면 1이에요 backup







그녀가 이곳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이곳을 맘에 들어 했고
고된 일과 제멋대로인 상사들을
오랫동안 견뎌온 사람이라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고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언제라도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거라고
짐작해 왔었기에

그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와 함께 일을 한 것은
1년 전 딱 한 번.

갑자기 들어온 의뢰를
처리할 사람이 없어

한 번도 손을 맞춰 본 적이 없는 그녀와
함께 일을 진행했었다.


그녀가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 대해
한 번으로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같은 일을 해본 사람으로서 느낀 바는
센스가 무척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때 맡겨진 일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건 그녀도 마찬가지였고.


처음부터 내 손을 타지 않은,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일은
시작부터 삐걱댔다.

하루의 시간을 들여
나름대로 준비해온 것들은

현지의 상황과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았고,

그곳을 잘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일에 합류한 그녀는,

내가 준비해온 자료에서 부족한 부분을
발로 뛰며 보충해주었다.



나는 일을 진행할 때
가능하면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 편이었지만

그녀가 이곳에서 해왔던 일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지금 진행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들과 말을 나누는 것은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적절하지 않은 부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부분을
자신이 해왔던 방식에 대입해
적절한 방법과 내용으로 바꾸어

사람들에게 원하는 정보를 얻어냈다.


지나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막무가내로 물어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요령 좋게 사람들을 골라 능청스럽게 말을 붙였고,
- 그것이 그녀의 탁월한 기술이었다. -

우리가 원하는 질문을 하면서도
질문의 내용이 우리의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들려서

그냥 지리를 모르는 사람이 길을 물어보는 것 같기도 했고,
길이 엇갈린 친구를 찾는 사람 같기도 했고,
애완동물을 놓친 사람이 헤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실 그건 그녀가
굳이 애써주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내가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내면 되는 정보들이었고,

그녀는 나의 뒤를 따라오면서
목적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거나,
내가 물어봐야 하는 말들을
단순히 옮겨주기만 하면

그녀는 제몫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일에 대해
자신과 상관없는 부분까지 숙지했고

그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방법으로 바꾸어
잘 해내주었다.

그녀의 센스는
그런 부분에서 느껴졌다.

-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센스를 가지고 있어도

귀찮은 일은 하려 하지 않는다. -


그녀의 행동은 사실
무척 위험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띄면,
그래서 누군가가 그녀에 대해
조금의 단서라도 말해준다면,

그녀는,
우리가 하려는 일과
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쩔 수 없죠.
시간이 얼마 없잖아요.

그리고 괜찮아요.
나 같은 얼굴을
누가 기억이나 하겠어요.

여태껏 아무도
불러주지 않은 얼굴인데

라고 그렇게 말했었다.



하긴, 요즘 길거리엔
예쁜 사람들이 많아서
하나하나 기억하긴 어려울 거예요.

라고 그녀에 대한 고마움을
잘 하지 못하는 농담으로 전했다.

- 물론 인간관계가 서툰 나만의 방법이었고
고마움은 조금도 전해지지 않았겠지만 -



시간이 얼마 없었는데
다른 이들이 준비해준 것들은 너무나 여유로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초조하게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았다.

그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곳에 대한,
그리고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

그녀는,
자신이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도 재능이 있고,

그래서 그런 일을 하려고 노력해왔는데

우연찮게 이런 곳으로 흘러들어
이상한 사람들만 대하고 있다고,

자신이 원했던 것은 이런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다.



여기도 그녀와 같은 재능이 필요했지만,
그녀는 이 일과 어울리지 않았다.

건물의 1층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재능과
중역의 집무실 앞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재능은
분명 다른 것처럼.


그녀에게 작은 조언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툴렀고
또 즐겁지도 않은 사람이었으므로

그녀가 하는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들어주기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오래 있었다.
그러니 조언 같은 것은 필요 없고

결론은 이미 내렸을 것이다.

이곳은 자신이 있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이 일을 끝으로
이곳을 떠날 것처럼도 생각되었다.
그 이후로는 언제라도
그녀가 떠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도움 덕분에
일은 아주 깔끔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끝이 났다.

이전의 일들과 비교해 본다면
무척 서툰 일처리였지만,

긴급한 의뢰였으니,
의뢰자도 불평할 처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상사의 평가는 달랐다.
마치 몇 년 전부터 치밀히 준비해온 일의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한 것처럼

나와 그녀를 비난했다.

비난이 습관인 상사였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조금 짜증이 났고,

그녀는 예상보다 많은 상처를 받았다.
상사의 비난을 건너건너 전해 들었을 뿐,
이렇게 직접적으로 듣는 건 처음인 것도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당신도 이곳에 오래 있었으니
그들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는 걸
잘 알지 않느냐고,

그러니 상처 같은 건 받지 말라고 말했다.



어차피 이런 일은
0이 아니면 1이에요.

그 1이 예쁘지 않다고 해서
실패하거나 잘못 된 건 아니죠.
그 사람들은
비뚤게 그려진 1을 탓하는 거지만

눈을 가리고
양손을 쓸 수 없는 상태에서도

어쨌든 우리는 1을 만들어냈어요.


그들이 목표로 했던 사람은

이제 그들 눈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염려하고
결과를 탓하는 건

그 사람들이
귀신이나 유령이 되어서

자신을 앞에 다시 나타나지 않겠느냐고
불안해하고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구요.

말도 안 되는 트집이에요.


나는 그렇게도 말해주었다.


그녀는
그 후로 1년을 더 버틴 셈이 되었다.

내가 해준 말이
그녀의 선택에 아무런 도움은 안됐겠지만,
그래도 그때 상사의 비난에

맞아요.
그들은 정말 쓰레기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어서 이곳을 떠나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해요.

라고 말해주었다면,
더 일찍 떠나게 되었을까.

그 뒤로 말을 나눈 적이 없으니
그녀의 생각을 더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곳에서 떠나기 전
마지막 일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

큰 건수를 물어와
사람들과 일을 나누고

자신이 가장 많은 보수를 챙겨가는
그런 일이었는데,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떠나기 전 그런 식으로 동료들을 이용했고

이용이라고 표현했지만,
얻어가는 것이 아주 없진 않았으므로
그리고 언젠가 자신들도 남을 그렇게 이용할 것이었으므로
다들 싫은 소리 한두 번 하는 것으로 넘어갔고

그래서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 일에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다는 서류는
다음 주에 보고 될 것이다.

이곳을 나가는 건 그렇게 쉽진 않다.

나가기 전에 서명해야할 서약서도 많고,
종이로 남기기에 적합하지 않아
구두로 약속해야할 것들도 많다.

- 물론 이곳을 떠나
지금과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그녀에겐
의미 없는 약속이었지만.

오히려 그녀가 먼저
이곳에서의 일들에 대해 잊고 싶어 할 테지만. -



조금 시끄러워질 것이고
그녀가 이곳에 일한 기간을 생각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상사에게 불려가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이것 역시 특별한 일은 아니다.


비난이 습관이 상사였고,
그것이 습관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만이

언제나처럼 불려갈 것이다.

-그들은 비난을 들으면서도
식사 메뉴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



나는 그녀의 소식을 듣고
내가 처리해야할 일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곳에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식당에서 우연이
눈을 마주친 때가

그녀와의 마지막이 되는 것이다.

눈을 마주쳤지만,
인사를 하지 않았다.

- 인간관계가 서툰 나의 방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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