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도 사라지지 말고,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키며 살아가면 된다고 backup






“내일이 아버지 기일이야.
혹시 시간이 되면 와줄 수 있을까.“


마지막 연락을 언제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그녀에게서
갑자기 그런 메시지가 왔다.


평소에 약속하나 없던 나였지만,
하필이면 내일 저녁엔
몇 가지 일이 있었다.

대부분은 미룰 수 있었지만,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일도 하나 있었다.

새벽 한 두시면 일이 끝나지 않을까 싶어
그때도 괜찮겠냐고 물어보려다,


오래 전,
그녀 아버지의 장례식 날이 기억났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녀와는 그다지 친분이 없었는데

어쩌다 부고를 전해 듣게 되었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찾아간 장례식이었다.


그곳에 가기 전 까지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놀았던 기억은
지금도 선명했고,
그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간 장례식이었다.

부의금도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작은 금액만을
준비해서 갔었다.


그러나 도착한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내가 느끼기에 조금 이상했다.

조문객이 많고,
화환도 많고,
분주한 분위기는

여느 장례식장과 다르지 않았지만,


그녀 아버지의 영정 곁에는

다른 사람 없이
오로지 그녀 혼자 앉아 있었다.


부의금을 받는 사람도 없었다.
돈을 넣는 통과
몇 개의 이름만이 적힌 방명록이
빈소의 입구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나에겐 어쩐지
그 모습이 이상하게만 보였다.

다른 가족이 없을 수는 있다.
친척도 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곁에 아무도 없는 건 아닐 것이다.

최소한 빈소 반대편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 중,
그녀와 같이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내가 알기에 그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누군가가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그럼에도 그날,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솔직히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고,

따지자면 나는
그녀의 곁에 있어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나는
영정에 꽃을 올리고
그녀와 인사를 하고
위로의 악수를 하고,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풀썩 앉아버리는 그녀를
그곳에 혼자 두고서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때 나는,
그녀에게 묻지 않고서
부의금을 받는 자리에 앉아

그녀의 곁에 있어주었다.



특별한 감정으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조금 이상한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그건
길바닥에 놓인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그것을 치워 쓰레기통에 넣어야만 하는
그런 감정으로 한 행동이었다.

비록 내가
청소부가 아니라고 해도,
청소 하는데 적합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쓰레기는 먼저 본 사람이
치우면 되는 것이다.

- 거기에 특별한 기술이나 자격이나 허락은 필요 없다. -


나는
누군가가 그녀의 곁에 있어주어야만 한다고,
- 가능하다면 안아주어야만 한다고 -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 혼자 있는 그녀의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은
지금 혼자 있는 그녀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사람이면
될 것 같았고,


이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바닥에 놓인 쓰레기를 보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것을 나만 보았다면,

그건 내가 치워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그날 저녁, 나는
그녀의 곁에 있어주었다.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던 것인지,

그 자리를 그저 치워버리고 싶고
보기 싫은 어떤 것으로 여겼는지,

아니면 그저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던 건지,

그녀는
그곳에 앉아있는 나에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뒤로 한두 명의 조문객 정도만이 빈소를 찾았고,
그래서 - 빈 자리를 채우는 것 말고 -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음식을 먹은 사람들도
그녀에게 인사를 하지 않고 돌아갔고

그녀도 그 사람들을 다시 배웅하진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곁에 있어줄 적당한 사람이 온다면
나는 그곳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그녀의 곁에는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

새벽에 그녀는
벽에 기대어 앉은 채로 졸았고
오랜 시간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조금 걱정되었지만,


어쩐지 거기까진 챙겨줄 수가 없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으므로.

- 거기에는 특별한 기술과 자격과 허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결국, 다음날 아침.
직원이 와서 빈소를 정리할 때까지
나는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직원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내가 채워줘야 하는 자리는 사라졌고,

직원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말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정신이 없을 그녀에게
먼저 연락하기도 뭣해서

그녀의 연락을 기다렸지만,
그 뒤로 그녀는 연락을 주지 않았다.


연락이 없었던 그녀가
서운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떨어진 쓰레기를 치운 정도로 칭찬을 받는 건
어린아이일 때나 그러한 이야기였고

그래서 그 후로
그날의 일을, 그리고 그녀를
자연스레 잊었던 것 같다.



그랬던 그녀가.
무척 많은 시간이 지난 뒤,
나에게 먼저 연락을 준 것이었다.

아버지의 기일을 앞두고서.


이제와서 그때의 일을 말하기 위해
나를 찾았을 것 같진 않았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는데,

어쩌면 그녀 앞에
그날처럼 치워버리고 싶은 쓰레기가
가득 놓여 있던 것일지도 몰랐다.

그것을 바라보다.
그것을 치워주었던 누군가가
떠올랐던 것일지도 몰랐고.




미룰 수 없는 내일의 일이
나에게는 중요한 기회였지만,

사실, 이번을 포기하고 다음을 기다려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일이었다.

어차피 이번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중요하다고 해도,
그건 나에게나 중요할 뿐,

상대에게 나는
그저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 일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의 결과물은

내일이든, 그 다음날 이든
더 나아지거나 나빠지지 않고
똑같을 것이었으므로.



나는 그녀에게
그날 갈 수 있을 거라고,

내가 가야할 시간과 장소를 알려달라고

그렇게 답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가 알려준 날,
그녀의 집에서 그녀를 만났다.


기일이라고 해서 제사 같은 것을 생각했는데
그녀의 집엔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작년까진 지냈는데,
올해부터는 안하려고.“

집안을 둘러보던 나를 보고선
내가 가진 생각을 알아챘는지,
그녀가 먼저 그렇게 말했다.


그날 이후,
처음 보는 그녀였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아보였다.

그동안 내가 뭘 생각했던 건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게 무엇이었든,
그것보다는 확실히 좋아보였다.


“앉아, 아버지를 위해 건배하자.”

그녀는 냉장고에서 술을 꺼내며 그렇게 말했고
우리는 안주하나 없는 식탁에서 잔을 나누었다.


그녀는 나에게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나에겐 특별한 일이 없었고,
그래서 딱히 전할 안부가 없어
그냥 잘 지냈다는,
아무런 내용 없는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고맙다는 말을 못한 거 같아서 연락했어.
변명 같기도 한데,
웃기게도 이번 아버지의 기일을 앞두고서야
문득 생각난 거야.

그날 내 옆에 너가 있었다는 걸,
그리고 너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보냈다는 걸.

그동안 무슨 정신으로 살았나몰라.
몇 년이 지나서야 이제 겨우 정신을 차린 것 같아.“

그녀는 웃으며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잔을 단번에 비우고 나서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어. 알고 있었어?”

그녀의 그 말은 알지 못했다.

그때에도 나는 그저 부고만 전해 들었을 뿐,
그런 일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듣지 못해서
지금 그녀의 말에 조금 놀랐다.


“좋은 사람이었고, 닮고 싶은 사람이었고,
나도 그렇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갑자기 그런 선택을 한 거야.

그래서 더 정신이 없었던 걸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며 그때 나를
아무런 인사 없이 돌려보낸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죽었다는 걸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그런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거든.

아버지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 받고, 욕을 먹고,
또 가난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삶이 고단할 거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버지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고,

그 방식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단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어.

오히려 그 결과를
자신의 삶에 대한 훈장처럼 여기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었거든.

나 역시
그런 일로 아버지를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어머니도 그런 아버지를 못 견뎌서 떠나버렸고,
내 동생도 아버지를 포기했지만,


나는 아버지의 삶이 좋았어.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평생을 비참하게 살게 될지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아버지를 보면서 생각했거든.

일종의 의무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은
그 의무를 져버린 얌체로 밖에는 안보였으니까.

아무래도 나는 아버지를 더 많이 닮았었나봐.“


나는 그녀의 빈 잔에 술을 채워주며
그녀의 이야기를 아무 말 없이 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오래전 그날 저녁, 그녀의 곁에 있었던 것처럼.


“그런데 이제 와서 무슨 이유로 자신의 삶을 포기해버린 건지
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런 고단함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런 건 지금보다 오히려 예전이 훨씬 더 심했을 거야.

그래서 갑자기 지금, 왜 그런 선택을 한 건지
도무지 짐작도 할 수 없었지.


나는 아버지에게 분명히 말했어.

나는 아버지처럼 살 거예요.
나는 아버지의 편이에요.

그렇게 말이야.“


확실히 그녀에겐 남들과 다른 특이한 면이 있었다.
그녀의 말처럼, 그건 삶의 태도 같은 것이었는데,

판에 박힌 정의 같은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
원칙이라는 잣대로 재단되지 않은,
모든 이들에게 차갑거나 뜨겁지 않고,
나 같은 사람에게조차 시원함과 따뜻함이 느껴지는,

그런 면이 있었다.

그것이 사람을 불러 모으기도 했고,
그 만큼 적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때 나는, 그녀의 그런 모습 때문에
그녀와 가까이 지내보고 싶기도 했다.

- 그녀의 말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어떤 의무감처럼 그녀의 모습에 끌렸다. -


그러나
고단해 보이는 그녀의 삶과,
적들에게 둘러싸여 소모적인 일들만 주고받는 그녀의 삶이
어쩐지 두렵게만 느껴져,

나는 그녀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으로만 남았었다.



“아버지는 자신 때문에
내가 욕먹는 걸 견딜 수 없었던 걸까.

사람들은 나한테 그 아비에 그 딸이라고 많이 욕했거든.

넌 우리아버지를 모르겠지만,
내가 그런 말들로 욕을 먹는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을 거야.


그것도 조금 비겁한 게
아버진 옛날 사람이고,
나는 그렇진 않잖아.

아버지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건
다 예전 일들 때문에 그런 건데 말이야.

그 시절에는, 그렇게 살아가는게
아버지의 방식에 부합 하는 일들이었어.


그들도 그건 알아.

어쩌면 그래서 나를 직접 비난하기 보단
우리 아버지를 통해서 나를 비난했던 걸지도 몰라.

지금 나의 일에서 잘못을 찾는 것보다
지금에서야 잘못으로 보이는 아버지의 일을 지적하는 편이
더 쉽고 간단하니까 말이지.


하지만 난 그런 것도 상관없었어.

그런 건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일들이니까.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나는 잘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진 그런 게 신경 쓰였던 걸까.

자신이 없어지면,
그래서 자신이 해왔던 예전 일들이
내 앞에서 없어지면,

내가 욕을 먹을 일도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던 걸까.


어쩔 수 없어 손을 더럽혔던 일들은
다시 깨끗해질 수 없고,
그 손을 나한테 물려주기 싫었던 걸까.

그 손으로 나를 도와주기 보단,
그 손은 없어지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 걸까.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니,
그녀의 앞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무척 많은 쓰레기들이 쌓여 있었던 것 같았다.


그날 내가, 그녀의 앞에서 치웠던 건
정말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아버지의 짧은 마지막 편지를 읽고 또 읽어도
도대체 무슨 말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어.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런 나약한 말만 하고서 사라진 걸까.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도 없었고,
몇 년 전부터는 이해하기를 포기 했어.


아버지는 잊고
그냥 내가 살아왔던 방식대로,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기로 했던 거야.

나에게도 나만의 방식이 있었으니까.
아버지의 곁에서 그걸 배웠으니까.


그런데 그 뒤로도
아버지에 대한 비난은 사라지지 않았어.

이전처럼 아버지를 비난하고,
또 그걸로 나를 싸잡아서 비난하는 거야.


이보세요들.
아버지는 이제 없어요.
그 자리엔 내가 있다구요.

그리고 아버지는 이제 아무 일도 못해요.
이미 죽은 사람이라구요.

내가 하는 일로만 나를 손가락질해요.
이제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구요.


그렇게 말해봤자 소용없었어.

그들에겐 살아있는 사람이든,
이미 죽은 사람이든

그런게 상관없었던거야.

처음부터 적인 사람들은
상대가 있든 없든 계속

적이 되는 거지.“

그녀는 냉장고에서 술을 한 병 더 꺼내왔다.
벌써 네 병째를 넘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 굉장히 안 좋은 일이 있었어.

뭐랄까. 조금 복잡한 일인데.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삶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그런 일을 겪었어.


밑도 끝도 없는 말로
나를 매도하는 거야.

너무 어처구나기 없어서
억울하지도 않더라.

말이 되는 소릴 해야
뭐라도 반박을 하겠는데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하니까
오히려 아무것도 반박을 할 수 없는 거야.

뭐랄까.
내가 느낀 대로 말하자면,
그들은,

‘당신 아버지는 남자답지 않은 행동을 했는데,
사실은 남자 행세를 했던 여자 아닙니까.

당신도 여자라고는 하지만,
당신의 아버지가 그랬으니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여자인척 하는 남자 아닙니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어.

그 말에 내가 뭐라고 반박해.

아니요.
아버지는 남자고
아버지의 딸인 저는 여자입니다.

이렇게 말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나는 또 얼마나 우스워져.




그러다가
약간 안 좋은 생각을 했지.

너무 고단한 탓에
다 포기하고

나도 아버지를 따라 갈까 하는 생각.

이렇게 살아서 뭐해.
저런 소리나 듣고 있는데,

굳이 더 살아 갈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


그런데 그 생각은 이내 그만뒀어.
이상하게도 조금 약이 올랐거든.

있지도 않은 일로
사람을 그렇게 몰아세우니까
억울하다기보단 약이 올라 죽겠는 거야.



그런데 문득,
아버지가 들었던 비난이,
어쩌면 이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떠한 일들로 인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그런 거.

여태껏 나는 아버지를 통해서만 비난을 받았지,
내 삶을 직접 비난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내가 그런 비난을 받으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


그들이 말한 것 전부는
있지도 않은 일이었는데,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상관없이,
그런 비난으로 인해

내가 해왔던 일들을 망쳐버리는 것 같았고,
크든 작든, 그 일과 얽혀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같아서 미안했거든,

내가 없으면 다 잘 될 거라는
그런 생각도 들었고,



그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어.
아버지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물론 이해하고 싶진 않아,
그 선택에 동의하지도 않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건 어떻게든 나와 함께
견뎌나갔어야 된다고 생각해.

부끄럽든, 후회되든,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된다고 한들.

심지어,
자신의 존재가 실제로 나를
망쳐버리게 되었다고 해도

내 곁에서 나와 함께 헤쳐 나갔어야 된다고 생각해.


왠줄 알아?

내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건
전부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한,

아버지가 어떤 모습이 된다고 해도
나는 받아들일 수 있고, 또 받아들여야만 해.

그래야 내가 제대로 살아갈 수 있어.


그러니,
아버지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해도

아버지가 있어야 할 곳은
지금처럼 먼 어딘가가 아니라

내 곁이어야 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후회하는게 아니라,
내 모습을 보면서 희망을 찾았어야 해.“


그녀는 흐르지 않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숨을 삼키며 다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기억나는 일이 있네.

아마 돌아가시기 얼마 전 이었던 거 같은데.

내가 뭔가 아버지에게 잘못한 게 있었어.

굉장히 사소했던 거 같아.
그날까지 해야 하는 걸 안했거나,
바빠서 까먹고 있었거나, 뭐 그런 거 겠지.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아버지는 나한테 불같이 화를 내는 거야.
그때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아마 마지막을 결심하고 나니,
나의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걱정 되서 그랬던 거 같아.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꾸중을 듣고만 있었는데,
마지막에 그러시는 거야.

‘지금 알게 됐으니 다행이지.
나중에 알게 됐으면 뭐라고 변명하려고 그랬니.’
라고.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말대답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그건 자기 자신한테 화를 냈었던 것 같아.

예전 일들을 덮어두고 여기까지 오게 되어서,
아무 것도 변명할 수 없어서,

어떤 설명도 소용이 없어서,

그런 선택을 결심한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었던 것 같아.


그때 나는 아버지에게 말해줬어야 했어.

아버지.
그럴 땐 그냥 미안하다고,
그때는 내가 어리석었다고,
그러니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그리고 그 잘못은 잊지 않고서
평생 짊어지고 갈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 된다고,


어디로도 사라지지 말고
자신이 했던 말을 지키면서 살아가면 된다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그 말을 증명하면 된다고,

그렇게 말해줬어야 했어.“


그 말을 끝으로
술이 취한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를 안고서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혹시나 그녀에게
치워야 할 것이 있다면
치워주려고 온 것이었는데,


그녀는 자신 앞에 놓인
더러운 것들을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봉투에 담았고
쏟아지지 않게 묶어 모두 밖으로 내어 놓았다.



그날 나는
그녀에게 해줄 것이 없었다.

그저
깨끗해진 그녀의 곁에 앉아
고생한 그녀를 칭찬해주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 이건 어린아이의 그것과 달리
어른으로서도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


비록 나는
그녀와 함께 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처럼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
나를, 내 주변을
더러워지게 두지 않고,


그녀가 지금껏 해온 것처럼
지금 내 앞에서 보여준 것처럼

내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며
살아가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나 하찮은 결심이라
그 말은 그녀에게 하진 않았지만,

그녀에게 말했다면 분명 나에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사실 그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자신과, 또 아버지가 바랐던 세상이라고


그렇게 말하며 칭찬해주었을 것 같았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 그리고 아마 그녀의 아버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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