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의 노래처럼 살고 있었다 backup





그가 돌아왔어.


늦은 밤, 그녀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고, 이해하고 나서는 쉽게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장난으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정말 그가 돌아온 거냐고 되물었는데,


아니, 돌아온 건 아니야.
그냥 온 거 같아. 사실, 뭔지 잘 모르겠어.


라고 자신의 이전 메시지를 정정했다.


그녀의 그 사람. 나에게 이름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길고 또 오래된 기억이었다. 그는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녀와 함께 하던 사람이었다. 일과 얽혀 몇 번 그녀를 만났고 그 몇 번으로 그녀를 마음에 두게 되었고, 나의 감정이 그녀를 향해 시작되려 했을 때, 그녀에겐 이미 다른 사람이 -그러니까 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돌이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랑을 얻지 못하는 건 나에게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마음은 자석 같은 것이라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기만 한다면, 혹은 두꺼운 천으로 감싸두기만 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길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마음을 깊은 곳에 넣어두고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지내고 있을 때 그가 그녀를 떠났다는 말을 들었다. 이유를 물을 수도 없을 만큼 슬퍼했고 그 이후로도 그녀는 나에게 아무 설명 없이 ‘그’라고 말할 만큼 그를 기다리는 것처럼 살아왔다. 물론 그녀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바쁜 하루였다. 일과 관련해 좋지 않은 일도 있었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집에까지 일을 가져 왔다. 마감도 멀지 않았지만, 그가 돌아왔다는 말에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일을 덮어두고 책장에서 CD 한 장을 꺼내 플레이어에 넣었다. 재킷에 이상한 그림이 그려진 CD. 별다른 프린팅 없이 그의 사인과 일련번호가 쓰인 CD. 재킷의 그림은 그의 의뢰를 받아 내가 그려준 것이었다. 아마도 그녀가 나를 소개시켜 주었겠지만.

그의 의뢰가 까다롭진 않았으나, 그가 원하는 그림과 그가 만든 노래는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내가 들어보지 않았던 형태의 음악이었고, 그가 원하는 그림은, 구체적인 설명을 붙여주긴 했지만, 단번에 그려내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그의 노래를 이해하고, 그의 요구에 맞춰 내가 납득할 수 있는 형태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끝내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사실 나는 의뢰인들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그려낼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들 역시,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일은 서로가 확신하지 못하는 목표를 향해 각자 달려갈 뿐이었고, 각자가 멈춰 선 곳이 더 정확한 목표라고 설득하는 것이 이 일의 본질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그랬다.

하지만 그의 의뢰는 달랐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문자로 표현해서 나에게 전달했으며, 중간 결과물을 수정할 때에도, 색, 기법, 형태, 구도를 정확하게 지정해 설명해주었다. 그런 의뢰는 받아본 적이 전혀 없었다. 그가 남에게 그림을 맡길 수밖에 없었던 건 단순히 그에게 그림을 그리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가 원하는 그림과 그의 노래와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 그의 명세에 따라 기계적으로 그림을 그려주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그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답례로 얼마간의 의뢰비와 내가 그린 그림이 인쇄된 CD를 받고서 들었던 생각은,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라면 나를 좋아할 수는 없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녀가 그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았고, 그런 부분이, 비슷한 어떤 것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는 것도 잘 알 것 같았다. 그런 건 나 자신을 바꾸거나 잠시 꾸며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 뒤로 그의 노래를 거의 듣지 않았지만, 그와 그녀가 헤어졌다는 말을 들은 후, 가끔 그 사람의 노래가 생각났다. 작업하면서 들을 노래가 적당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노래를 찾아서 들었고, 그 사람의 새 노래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CD를 사기도 했다. 나는 책장에서 다른 CD를 한 장 꺼냈다. 그건 그가 만든 노래 중에서 맘에 들고 또 이해할 수도 있는 곡이었다. 그 곡은 그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노래였다. 지금껏 그의 노래를 들을 때 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었던 부분들이 새로운 보컬을 만나면서 다듬어져 포장되고, 묘하게 맞아떨어져, 당시 비슷한 장르의 다른 노래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노래였다. 그림으로 치자면 도형과, 정물과, 풍경이 조화롭지 않은 배색으로 그려져 있어 한 장의 완성된 그림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그림을 뒤집어서 본다면, 혹은 정확히 네 부분으로 나누어 배치를 바꿔본다면 그림을 보는 사람 누구라도 스스로에게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갈 수 있는 그런 노래였다. 가사는 그 사람의 노래답지 않게 신파적이었는데, 작사가에는 그의 이름과 보컬의 이름이 함께 적혀있었다. 그래도 곡에는 썩 나쁘지 않은 가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CD에 붙어있는 그림은 그와도, 그의 노래와도 전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그림은 노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그저 분홍색과 하트를 어지럽게 붙여놓았을 뿐이었다. 가사야 그의 생각이 조금이라도 담겨 있었겠지만, 그 그림만큼은 그가 원해서 붙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의 앨범에 그림을 그려본 나로서는 원하지 않는 그림을 붙여야 하는 그의 괴로움이 어떨지 조금은 상상이 되었다.

그 CD의 마지막 곡은 그녀에게 의미가 있는 노래였다. 그녀와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이 CD가 발매되고 얼마 되지 않아 우연히 그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 곡의 가사가 마치 자기에 하는 말 같다고 했었다. 사실 나는 그 노래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첫 곡과는 다르게 예전 그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곡이었고 다른 보컬이 아닌, 그가 직접 부르는 노래는 예전 노래들처럼 이상했고 가사도 잘 이해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기괴한 단어의 나열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이 자신에게 하는 말이라고 했었다. 나는 그 가사가 그녀를 향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는데, 그건 그녀가 착각을 하고 있다기보다는, 혹은 내가 그 사람과 그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을 몰라서라기보다는, 그 가사가 그 사람과 그녀만이 알 수 있는 일종의 암호 같은 언어라서 그랬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그런 말들 때문이었을까. 나는 언젠가 그가 그녀에게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 둘이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그런 암호 같은 말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므로, 나의 노력으로 그와 그녀의 빈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다고 해도, 어느 날, 그가 그녀에게 돌아온다면, 내가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말로 그가 그녀를 설득한다면, 그녀는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려 할 것이고, 나는 그런 그녀를 그에게 보내주어야만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이 그와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를 마음에 두었던 나에게,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끝내, 나는 그녀와 함께 할 수 없었다. 이런 날이 오고 보니,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잘 된 일일까.


그녀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 그렇게 물었다. 그 사람이 돌아왔다면 그건 그대로 잘 된 일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돌아온 게 아니라고 해도, 지금 그녀의 방에, 그녀의 곁에 그 사람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그를 기다려 왔던 그녀에겐 잘 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그녀에게 잘 된 일이라고 답을 보냈다.


그가 만든 노래 중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더 있었다. 그가 대중에게 인지도를 쌓은 후 냈던 두 번째 CD였다. 내 입장에서는 사실 그녀가 완전한 친구는 아니었다. 그녀의 빈자리를,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해둔 그 자리를, 그리고 주인이 분명한 그 빈자리를 보고 있으면 깊이 넣어두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래서 그것들을 주워 담는 그런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그 노래의 가사는 어쩐지 나의 그런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감정이라는 것은 화분 같아서 그냥 방치해둔 채로 남겨두면 언젠가 말라 죽어 썩어지지만, 햇빛을 받지 못해도, 흙을 갈아주지 않아도, 가끔 생각날 때마다 물을 주는 정도만으로도, 가지하나 정도는, 혹은 새로운 싹 정도는 생겨났다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나와 그녀는 그런 사이였다. 나에게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 사람의 그 노래는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물론 그것을 그녀에게, 심지어 곡을 쓴 그 사람에게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나는 인터넷에서 그 노래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으며 잠들었다.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나는 그 사람의 노래처럼 살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 조차 그렇게 살고 있지 않겠지만-


그 사람은 그 노래 이후로 어떤 노래도 발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대중에게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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