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유통기한이 다 되었을 뿐이다 backup





그녀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


최근 그녀와 함께 일을 하는 동안
몇 번의 실수가 있었고,

테스트는
더 이상 나와 함께 일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그녀에게서 얻어낸 마지막 기회였다.


그녀는 우리가 일을 할 때 사용하는 도구들을 꺼내
탁자에 늘어놓았고,

나무토막과, 고기 덩어리와, 빈 종이에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의 과정 중 몇 단계를
시연해 보도록 했다.


그것은 오래전,
처음 이 일을 시작하려는 그녀에게
내가 했던 테스트였다.

적은 나이가 아닌 그녀에게
처음 시작하게 되는 이 일은
적당하지 않아보였고,


포기하길 바라는 마음에
아직 그녀의 손에 익지도 않은 도구들로
- 그러나, 익숙하게 사용해야만 하는 도구들로 -
테스트를 보게 했던 것이다.


이 일은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그녀가 일을 시작하게 되면
그녀의 곁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사라지고,

오직 나만이 남게 된다.


나와 함께 평생 동안
작은 방에 갇히듯이 지내면서 일을 준비하고,

가끔 밖에 나가 맡은 일을 처리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했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도 알지 못했다.

어차피 그녀의 곁엔
아무도 없었을지 몰랐다.


그러나 그녀의 과거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한 삶이었다고 해도

앞으로의 남은 삶을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지는 않길 바랐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그녀에게
나의 테스트는 어쩌면 가혹한 것이었지만,

당시의 그녀는 나의 테스트를 통과했다.

자신의 앞에 놓인 도구들과
그 앞에 있는 물건들이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나의 지시를 빠짐없이 수행했고,

비록 손과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남았지만

그녀가 만든 결과물과,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모습은

이 일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녀를 내 곁에 두고서
같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이 일도,
높은 체력과, 강한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달리 말하면,
이 일을 해낼 수 있는 데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일들과 달리
이 일의 유통기한은 무척 빨리 찾아온다.

그건 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도구를 쓰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한쪽 팔을 쓸 수가 없었고,
손이 두 개로도 모자라는 일을
하나로 해내기는 불가능 했다.


한 달 정도 일을 쉬었을 뿐인데도
손은 무뎌졌고.

다친 기억은
나의 마음을 언제나 흔들어 놓았다.


익숙하게 해왔던 것들이 잘 되지 않았다.

다칠까봐 조심하면
원하는 만큼의 것이 나오지 않았고,

그것이 얼마나 형편없는 지는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금방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잠시 동안은 그럭저럭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눈속임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국 나는
그녀의 곁에서
많은 실수를 저질러 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준 마지막 기회를
나는 통과하지 못했다.

떨리는 손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신경이 예민해진 탓에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팔을 다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틀린 생각이었다.

팔을 다친 것과는 상관없이,
일을 쉬었던 것과는 상관없이,


나는 그저 유통기한이 다 되었을 뿐이었다.

- 어쩌면 여태껏 일을 하면서 다쳐본 적이 없던 내가
다쳤다는 것은, 나의 유통기한이 다 되었음을 알려주는
하나의 지표였을 것이다. -


그녀는 내가 테스트를 하며 만들어낸
말 그대로 처참한 결과물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이 일을 그만 두라고 말했다.


“당신은
이제 일의 순서 조자 체대로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그녀는 내가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워
낡은 노트를 읽는 걸
보았다고 말했다.

그것을 읽고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고집을 부려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말한 노트는,
이 일에 대한 방법과
중요한 부분을
나름대로 정리해서 적어둔 것이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
친절하게 적어둔 건 아니었다.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
암호처럼 남긴 글들.

중요하지만,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잊어버릴 수 없을 거라고 자신했던 것들은
적어두지 않은 글들.


거기엔 많은 것이 적혀있었지만

그것은 이제
그것을 쓴 나조차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 있었다.



그것을 쓸 당시에는
그 글을 볼 필요가 없었다.

모든 건 머릿속에,
그리고 몸에 기억해두었으니까.


다시 볼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써둔 것이 아니었다.

이제와 다시 읽어보니 그러했다.


그리고

몸에 기억해 둔 것들은
시간과 함께,

종이에 남겨둔 것들은
해석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가 되어,

적어두지 않은 중요한 것과 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말대로
이제 나는
그녀와 같이 일을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녀에게
일을 그만 둘 거라는 말 대신,
같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평소 나의 말투를 알고 있는 그녀는
그게 무슨 뜻이냐며,

자신과 같이 일을 하지 않겠다는 건
자신을 떠나 어디선가 이 일을 계속 하겠다는 뜻이냐며,

내가 하지 않은 말의 의미에 대해 추궁했다.



“너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너랑 일을 같이 하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 일을 그만 둘 수 없을 거야.


네 말대로
내가 방법을 익힐 수 있고, 순서를 기억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서 할 수도 있겠지만

아니, 남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그런 일을 반드시 찾아야만 하겠지만,

하루의 일을 끝내고 나서
멍해지는 시간이 되면

내가 하게 될 일이라고는
책상에 도구들을 늘어놓고
하나하나 상태를 점검하고

박스에 모아둔
쓸모없는 재료들을 꺼내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예전처럼 하는 것뿐일 거야.


그만둔다고 그만둬지는 일이 아니야. 이건.
너도 그건 잘 알고 있잖아.

그러니
이 일을 그만 둔다는 말은 할 수 없어.“


그녀는 이 바닥이 무척 좁다고 말했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지 않고
어디선가 몰래 숨어 한다면

언젠가는 자신과 만나게 되고

그러면 나와 함께 일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 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너도 방금 봤잖아.

내가 만드는 결과물들은
아무도 찾지 않고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바로 쓰레기통으로 버려질 것들이야.

너를 곤란하게 만드는 일은 하나도 없어.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발견된다고 한다면
그곳은 쓰레기들이 모이는 쓰레기장일 뿐일 거야.

생각해봐. 너 같은 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데
누가 굳이 쓰레기장을 뒤져서 내가 하는 일을 찾아내려고 하겠어.“


“쓰레기통을 뒤져서라도
나를 엿 먹이고 싶어하는
쥐새끼 같은 인간들이
어디에나 있으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했고,
이쯤 되면 나를 설득을 할 수 없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로 돌아갔고,
나는 이곳을 떠날 준비를 했다.


나는 내 앞에 놓인 도구들 중에
그나마 쓸 수 있는 것들을 모아
가방에 담았고.

읽을 수도 없는 노트를
가방에 넣어

그곳을 떠났다.



그날 저녁,
나는 싸고 더러운 숙소에 묵었는데

청소가 되지 않은 방을,
얼룩진 벽지를 들키지 않으려

방에는
탁자에 놓인
작고 붉은 조명 하나가 전부였다.


나는 탁자위에
내가 가져온 도구를 꺼내고
구인광고가 적힌 신문을 깔고서


방안에 있는 적당한 물건으로
그녀의 테스트보다 훨씬 쉬운 일을
시험 삼아 해보았다.

그건 무척 기본적인 일이었다.
예전이었다면 한 손으로도
어쩌면 아무런 도구 없이도
해낼 수 있던 일이었다.



그녀에겐
내가 하는 일들이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아무도 찾지 않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실,
진심이 아니었다.

비록 형편없는 나의 결과물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쓰레기들 중에서는
그래도 쓸 만한 것이 될 거라는,

최소한 쓰레기를 줍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희망이 있었다.


이 일은
그만 둔다고 그만둬지는 게 아니지만,

그런 작은 희망조차도 가지지 못한다면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비겁하고 겁쟁이 같은 생각이었지만
이 일을 그만 둘 수 없는 나로서는
그런 희망이라도 가져야 했다.



몇 시간을 끙끙대며
신문위에 만들어진 결과물은

그녀의 앞에서 만든 것들과 다름없이
형편없는 것이었고,

좋은 구석 하나 없는,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쓰레기였지만.


그래도 오늘은
무언가를 만들어냈다는 사실 하나로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신문으로 정성스럽게 포장해
이전의 사람들이 남기고간 쓰레기들이 가득찬
쓰레기통의 맨 위에 버렸다.



이 쓰레기를 가져가는 누군가는,
그것을 보고

버리기는 조금 아까운데

라는 그런 생각이라도 해주길 바라며

잠들었다.